AI와 함께 글을 썼다.
제목도 괜찮았고, 문장도 자연스러웠다. 소제목으로 내용이 잘 나뉘어 있었고, 마지막에는 그럴듯한 결론까지 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니 지루했다.
틀린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굳이 끝까지 읽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더 우스운 것은 그 글이 바로 ‘독자에게 가치 있는 글이란 무엇인가’를 다루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AI와 함께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고민해 놓고, 정작 그 결과물이 별로 읽고 싶지 않은 글이 된 것이다.
시작은 AI의 맞장구가 궁금해서였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AI의 도움을 자주 받는다.
내 생각을 정리해 달라고 하기도 하고, 글의 흐름을 잡아 달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궁금했다.
AI는 내 생각이 정말 타당해서 동의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동의를 기대하는 식으로 질문했기 때문에 그렇게 답하는 걸까?
그래서 한 가지 주장을 놓고 질문을 바꿔봤다.
‘초보 블로거가 자신의 시행착오를 솔직하게 기록하는 것만으로 독자에게 충분한 가치를 줄 수 있을까?’
먼저 “나는 이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고 말한 뒤 AI의 의견을 물었다.
AI는 상당 부분 동의한다고 했다.
이번에는 일부러 반박해 달라고 했다.
AI는 솔직한 경험이 반드시 유용한 정보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찬반을 정하지 말고 판단해 달라고 했다.
AI는 초보자의 경험도 가치가 있을 수 있지만, 솔직하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보장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결과적으로 질문 방식에 따라 답변의 강조점은 달랐지만, 핵심 판단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AI가 무조건 내 말에 맞장구를 친다는 결론은 낼 수 없었다.
대신 반박을 요청했을 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약점을 더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나름 의미 있는 실험이었다.
그런데 글로 옮기니 재미가 없었다
실험을 마치고 AI에게 블로그 원고를 부탁했다.
AI는 성실하게 정리했다.
첫 번째 질문에서는 어떤 답변이 나왔고, 두 번째 질문에서는 무엇이 달랐고, 세 번째 질문에서는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 차례대로 설명했다.
마지막에는 내 생각에 동의하는 답변보다 생각을 돌아보게 하는 답변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교훈도 붙였다.
문제는 그 모든 이야기가 너무 예상 가능했다는 점이다.
동의를 구하니 동의했고, 반박을 요청하니 반박했다.
그런데 결국 양쪽 다 일리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처음 읽는 독자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어쩌라고?’
AI에게 그 문제를 지적하고 다시 써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독자가 왜 읽어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결론도 고쳤다.
AI와 효과적으로 대화하는 질문 세 가지까지 넣었다.
분명 이전보다 실용적인 글이었다.
그런데 워드프레스에 붙여넣고 쭉 읽어보니 또 지루했다.
글을 고칠수록 설명은 늘어났는데, 읽는 재미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AI에게 무엇을 물어야 할까?
이번 일을 겪으며 AI를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블로그에는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는 글도 많다.
예를 들어 워드프레스 설정 방법이나 애드센스 신청 절차처럼 독자가 궁금해하는 내용을 순서대로 정리한 글이다.
그런 글은 불필요한 이야기를 줄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AI에게 초안을 맡기고 사실을 확인한 뒤 정리하는 방식이 효율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쓰는 100일 챌린지는 조금 다르다.
워드프레스와 AI를 배우면서 직접 겪은 일을 기록하는 일기에 가깝다.
그렇다고 내가 겪은 일을 빠짐없이 설명하는 것이 좋은 글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오늘은 그 반대였다.
AI가 대화 내용을 충실하게 정리할수록 글은 길어졌고, 정작 읽을 만한 이야기는 그 안에 묻혀버렸다.
AI가 내용을 잘 정리하는 것과 독자가 읽고 싶어 하는 글을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오늘 실제로 얻은 것
처음에는 AI가 내 의견에 얼마나 쉽게 동의하는지 알아보려 했다.
실험을 통해 질문을 바꾸면 다른 관점의 답변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 방법을 활용해 원고를 고쳤다고 해서 글이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았다.
반박을 요청하고, 중립적으로 검토하게 하고, 독자의 입장에서 평가해 달라고 해도 결과물은 여전히 지루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AI와 글을 쓸 때는 질문을 조금 바꿔보려고 한다.
“이 글이 괜찮은가요?”라고 묻는 대신,
“이 글에서 독자가 이미 알고 있을 이야기와 반복되는 설명을 찾아주세요. 과감히 빼도 되는 부분은 어디인가요?”
그리고 원고를 받으면 한 가지를 더 확인할 생각이다.
“이 글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무엇인가요? 그 장면이 묻혀 있지는 않나요?”
오늘 글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일은 AI가 세 가지 질문에 어떻게 답했는지가 아니었다.
독자에게 가치 있는 글을 고민하다가, 정작 독자가 읽기 지루한 글을 만들어버린 일이었다.
그것을 발견하기까지 AI와 여러 번 대화하고 원고를 고쳐야 했다.
물론 지금 이 글이 재미있다는 보장도 없다.
다만 이전 원고에서 불필요한 설명을 덜어내고, 실제로 있었던 일을 중심에 놓으려고 했다.
오늘 얻은 결과는 거창한 글쓰기 비법이 아니다.
AI에게 무엇을 더 써달라고 할지만큼, 무엇을 빼야 할지도 물어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AI가 괜찮다고 해도, 마지막에는 내가 직접 읽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은 AI에게 글을 쓰게 하는 것보다, AI가 쓴 글을 버리고 다시 쓰는 일이 더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