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골프 라운딩을 마치고 함께 식사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미국 은퇴자들의 노후생활이 화제에 올랐다.
그중 한 사람이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미국 사람들은 은퇴하면 부부가 소셜시큐리티 말고도 401(k)나 다른 연금에서 한 달에 1만 달러 정도는 받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야.”
순간 귀가 솔깃했다.
소셜시큐리티까지 합쳐서 월 1만 달러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소셜시큐리티는 별도로 받고, 그 외의 은퇴소득만으로 매달 1만 달러 정도가 들어온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오랫동안 전문직에 종사했거나, 좋은 직장에서 은퇴연금을 쌓았거나, 투자에 성공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있다’와 ‘대부분이 그렇다’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정말 미국 은퇴자들의 일반적인 생활 수준이 그 정도일까?
내가 주변에서 보아 온 노후의 모습
그 이야기가 쉽게 믿기지 않았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미국에서 살아오며 주변에서 접한 한국계 이민자들의 노후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두고 시니어 하우징이나 어포더블 하우징을 알아보는 사람들을 보았다.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주거 문제를 고민하고, 의료비 부담 때문에 메디케이드 자격을 확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물론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미국 전체 은퇴자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한국계 이민자들의 형편이 미국인 전체보다 더 어렵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
다만 내가 가까이에서 접해 온 노후의 모습은, 소셜시큐리티 외에 매달 1만 달러가 더 들어오는 생활과는 거리가 있었다.
반대로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로워 보이는 지인들도 있다.
오늘 함께 이야기를 나눈 분 중에는 1979년에 미국에 유학 와서 약 10년 동안 공부하고 일한 뒤 한국으로 돌아가 대학교수로 재직하다 은퇴한 분이 있다. 2016년에 다시 미국으로 와 정착했고, 지금도 한국에서 받는 연금이 생활의 기반이 되고 있다. 아내는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분의 설명으로는 세탁소에서 버는 돈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입은 아니라고 했다.
또 다른 지인 부부는 한국에서 각각 교사와 국가공무원으로 근무하다 미국으로 왔다. 두 사람 모두 한국에서 연금을 받으면서 미국 생활을 이어 갔고, 이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내가 보기에는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생활에 큰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물론 그분들의 정확한 연금액이나 자산 사정을 아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생활만으로 경제적 여유를 판단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을 떠올리다 보니 궁금해졌다.
내가 보고 듣는 노후생활 중 어느 쪽이 미국 은퇴자들의 일반적인 모습에 더 가까울까?
실제 미국 은퇴자들의 소득은 얼마나 될까?
궁금한 마음에 미국 정부와 공공기관의 자료를 찾아보았다.
먼저 미국 인구조사국의 2022년 자료를 보면, 65세 이상 미국인 중 소셜시큐리티 외에 별도의 은퇴소득을 받는 사람은 약 48%였다.
다시 말해 절반이 조금 넘는 사람들은 조사에서 별도의 은퇴소득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론 은퇴계좌에 돈이 있어도 그해 인출하지 않았을 수 있으므로, 별도 은퇴소득이 없다는 것이 곧 은퇴자산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더 눈길을 끈 것은 그 소득의 규모였다.
소셜시큐리티 외의 은퇴소득을 받는 사람들의 연간 소득 중간값은 약 1만 7,160달러, 월로 환산하면 약 1,430달러였다.
이는 개인 기준 통계이므로 부부 합산 소득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국 은퇴자 부부 대부분이 소셜시큐리티 외에 매달 1만 달러를 받는다는 주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401(k)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401(k)는 일반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적립한 은퇴자산을 나중에 인출하는 제도다. 모든 은퇴자에게 매달 일정한 금액이 평생 지급되는 연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가령 은퇴계좌에서 매달 1만 달러씩 꺼내 쓴다면 1년에 12만 달러다.
은퇴자산의 연 4%를 인출한다고 단순 가정하면, 그 정도 금액을 인출하기 위해서는 약 300만 달러의 투자자산이 필요하다. 실제로 적절한 인출액은 투자수익률, 물가, 은퇴 기간 등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자산을 가진 은퇴자들이 분명 있겠지만, 대부분의 미국 은퇴자가 그 정도의 은퇴계좌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참고로 미국 의회조사국이 분석한 2022년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가구 중 401(k)나 IRA 같은 은퇴계좌를 보유한 가구는 약 47%였고, 계좌를 보유한 가구의 잔액 중간값은 약 17만 달러였다.
오늘 골프장에서 들었던 이야기는 적어도 미국 은퇴자 전체의 일반적인 현실을 설명하는 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미국 은퇴자 대부분이 어렵게 살까?
그렇다고 반대 방향으로 결론을 내릴 수도 없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2024년 조사에서는 은퇴자의 약 82%가 자신의 경제적 형편을 ‘괜찮다’거나 ‘편안하다’고 평가했다.
생각보다 높은 비율이었다.
다만 여기에는 경제적으로 매우 편안하다는 사람뿐 아니라, 현재 생활을 그럭저럭 유지할 만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포함된다.
경제적으로 괜찮다고 답했다고 해서 모두 풍족한 연금이나 큰 은퇴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주거비와 의료비를 살펴보면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하버드대학교 주택연구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2023년 미국의 65세 이상 가구 중 약 34%가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고 있었다.
또 2023년에는 메디케어 가입자 중 약 20%가 메디케이드도 함께 이용했다.
메디케어는 주로 65세 이상을 위한 의료보험이고, 메디케이드는 소득과 자산 등 자격 요건에 따라 의료비를 지원하는 제도다. 두 제도를 함께 이용하는 사람이 상당하다는 것은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지원이 노후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수치들을 보면서 내가 주변에서 보아 온 모습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저렴한 시니어 주택을 알아보거나 메디케이드 자격을 확인하는 일이 미국에서 아주 예외적인 노후의 모습은 아니었다.
물론 그런 제도를 이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생활이 불행하거나 어렵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용할 수 있는 제도를 잘 활용하면서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노후생활을 한 가지 모습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미국, 서로 다른 은퇴생활
오늘 대화를 나눈 분들이 일부러 과장된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알고 지내는 은퇴자들 가운데 실제로 충분한 은퇴자산과 연금소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다.
골프를 함께 치는 사람들, 비슷한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비슷한 생활 수준의 사람들을 접할 가능성도 있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내 주변에서 저렴한 주택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고 해서 미국 은퇴자 대부분이 그런 형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내가 접한 경험을 전체로 확대하는 일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한국에서 안정적인 연금을 받아 미국에서 생활하는 지인들을 보면서는 연금이 주는 안정감을 생각하게 됐다.
반대로 주거비와 의료비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은퇴 후에도 생활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보게 됐다.
어느 쪽도 틀린 모습이 아니다.
같은 미국에서 살아가는 서로 다른 노후일 뿐이다.
내게 편안한 노후란 무엇일까?
오늘 골프장에서 들은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미국 은퇴자들의 실제 소득을 이렇게 찾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셜시큐리티 외에도 매달 1만 달러를 받는 은퇴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식 자료를 살펴본 결과, 그것이 대부분의 미국 은퇴자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미국의 은퇴생활이 모두 어렵다는 뜻도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은퇴자들도 많았고, 주거비와 의료비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은퇴 후 매달 얼마를 받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돈으로 어떤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질문 아닐까.
집에 대출이 남아 있는지, 의료비가 얼마나 드는지, 가족을 경제적으로 도와야 하는지에 따라 같은 연금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것이다.
매달 들어오는 돈이 많아도 지출이 더 많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고, 수입이 상대적으로 적더라도 필요한 생활비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면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다.
결국 편안한 노후를 월 소득 얼마 이상이라고 한 줄로 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늘 대화는 미국 은퇴자들이 얼마나 많은 연금을 받는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고 나니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
나는 앞으로 어떤 노후를 준비하고 있으며, 내가 생각하는 ‘여유 있는 노후’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103일 차인 오늘, 그 질문은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참고 자료
- 미국 인구조사국(Census Bureau), 2022년 65세 이상 인구의 은퇴소득 통계
- 미국 의회조사국(CRS), 2022년 고령 가구의 은퇴계좌 보유 현황 분석
-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Economic Well-Being of U.S. Households in 2024
- 하버드대학교 주택연구센터(JCHS), 고령 가구의 2023년 주거비 부담 분석
- KFF, 2023년 메디케어·메디케이드 동시 가입자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