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APEN 제12회 포럼에 참석했다.
이번에는 평소와 조금 다른 역할이었다. 행사에 참석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뿐 아니라, 기타를 들고 직접 연주하는 순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 서서 기타를 연주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집에서 혼자 연습할 때는 제법 그럴듯하게 들리던 연주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달라진다. 손가락은 평소보다 말을 잘 듣지 않고, 머릿속에서는 다음 코드가 무엇인지 한 번 더 확인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좋아진 것 중 하나가 웬만한 일에는 덜 긴장하게 되었다는 점인 줄 알았는데, 기타 앞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기타를 들고 사람들 앞에 섰다.
그리고 그 경험이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음악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순간
우리의 기타 연주에 앞서 찬양 순서가 있었고, 바이올린 독주도 있었다.
찬양에는 찬양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었고, 바이올린 독주에서는 한 악기가 만들어 내는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음악을 비교하거나 우열을 가릴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순서들을 지켜보고 직접 기타를 연주하면서, 내가 왜 기타라는 악기를 좋아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기타는 혼자 연주해도 좋지만, 누군가의 노래를 받쳐 줄 때 또 다른 매력이 살아나는 악기다.
익숙한 노래가 시작되면 주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따라 부를 수 있다. 연주자가 앞에서 모든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음악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특히 찬양은 그렇다.
한 사람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부르는 찬양도 좋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를 때 느껴지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다.
기타 반주는 그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데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기타 한 대가 있다고 모든 사람이 갑자기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은 아니다. 연주자의 실력도 필요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의 호흡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포럼을 통해 내가 기타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는 조금 더 분명해졌다.
잘 연주해서 박수를 받는 것보다, 사람들이 함께 노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기타의 가장 큰 매력이다.
처음 기타를 다시 잡았던 이유
96일 차 글에서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진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기타였다.
내가 뒤늦게 기타를 다시 배우기 시작한 데에는 단비 찬양팀이 있었다.
단비 찬양팀은 병원과 양로원을 방문해 환자들과 어르신들에게 찬양으로 위로를 전하고 있다. 그동안은 주로 악기 없이 목소리로만 찬양하는 아카펠라 방식이었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기타 반주가 더해진다면 찬양이 조금 더 풍성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팀원들 가운데 기타를 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결국 내가 직접 배워 보기로 했다.
돌이켜 보면 다소 무모한 결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기타를 배우겠다고 마음먹는 것과 실제로 손가락을 움직여 원하는 소리를 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시작한 이유만큼은 분명했다.
언젠가 단비 찬양팀과 함께 찬양할 때 내가 기타 반주를 맡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연습과 현장은 달랐다
이번 포럼에서 연주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아직 배울 것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혼자 연습할 때는 내가 편한 속도로 반복하면 된다. 틀리면 멈췄다가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하는 연주는 다르다.
음악은 계속 흘러가고, 다른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 한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혼자 멈출 수도 없다.
내 손가락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연습의 양 못지않게 실제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 부분에서 긴장하는지, 다른 사람들과 연주할 때 무엇이 어려운지, 내가 더 익혀야 할 것이 무엇인지가 현장에서 훨씬 선명하게 드러났다.
솔직히 아쉬움도 있었다.
조금만 더 자연스럽게 연주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기타를 치는 데 급급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노래와 반응까지 여유 있게 느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쉬움만 남은 것은 아니었다.
부족한 실력으로도 일단 사람들 앞에 서서 연주를 해보았다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다음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적지 않은 수확이었다.
무엇보다 기타를 배우는 일이 단순히 개인적인 취미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시 확인했다.
‘언젠가’에서 ‘다음 달’로
사실 지금까지 내 마음속에는 한 가지 조건이 붙어 있었다.
기타를 좀 더 잘 치게 되면 단비 찬양팀에서 반주를 시작하겠다는 것이었다.
얼핏 들으면 당연한 이야기다. 다른 사람들의 찬양을 받쳐 주려면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좀 더 잘 치게 되면’이라는 말에는 정해진 기준이 없다.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면 또 부족한 부분이 보일 것이고, 그 부분을 고치고 나면 다른 아쉬움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시작하는 날은 계속 뒤로 밀릴지도 모른다.
이번 APEN 포럼에서 연주를 마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준비만 하고 있을 것인가.
물론 준비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실제로 반주를 시작하려면 지금보다 더 성실하게 연습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준비와 실전 경험을 꼭 순서대로 나눌 필요는 없지 않을까.
연습하면서 현장에 서고, 현장에서 부족한 점을 배우고, 다시 연습하는 과정을 반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목표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했다.
다음 달부터 단비 찬양팀의 병원과 양로원 방문 사역에서 기타 반주를 시작해 보는 것.
‘언젠가’가 아니라 ‘다음 달’이다.
이렇게 적고 나니 조금 긴장되기도 한다.
다음 달이라고 해서 손가락이 갑자기 능숙해지는 것도 아니고, 실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무엇을 위해 연습하는지는 더 분명해졌다.
내가 원하는 것은 멋진 기타 연주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환자와 어르신들이 익숙한 찬양을 조금 더 편안하게 따라 부르실 수 있도록, 그 곁에서 작은 반주를 보태는 사람이고 싶다.
96일 차에는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진다고 썼다.
102일 차인 오늘은 그중 하나를 더 이상 마음속에만 두지 않기로 했다.
기타를 다시 잡았을 때 품었던 소망을 이제는 실제 현장에서 시작해 보고 싶다.
아직 실력은 부족하다. 앞으로도 실수할 것이고, 연습해야 할 일은 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타를 잘 치게 된 다음에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섬기면서 더 잘 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번 APEN 포럼은 그 결심을 하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연습을 계속하면서, 실제로 그 자리에 서는 일이다.
다음 달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