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류사회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한인 1세와 2세의 다른 시선 – 110일 차

미국에서 오래 살면 미국 주류사회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한인 이민자들 사이에서 ‘미국 주류사회에 진입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나 역시 별다른 의문 없이 사용해 왔던 표현이다.

그런데 막상 주류사회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영어를 잘하고 백인 미국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일까? 미국 회사에 취직하거나 정치·경제·문화 분야에서 인정받는 것일까?

돌아보니 나도 그때그때 다른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해 왔던 것 같다.

미국인들과 어울리고 싶었던 시절

한국 회사의 미국 지사장으로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미국인들이 다니는 교회에 등록하고 싶었다.

미국에 왔으니 미국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살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 어떤 교회가 있는지조차 잘 몰랐다. 주일마다 몇 군데를 찾아가 봤지만 예배 방식도 낯설고 마음에 맞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두세 달쯤 지나 그 시도를 접었다. 가족들이 미국에 합류하면서 한인교회에 등록했고,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돌아보면 그때 내가 생각했던 주류사회란 미국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세계에 가까웠다.

시민권 선서식에서 달라진 생각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던 날의 선서식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 40~50명 정도가 새 시민이 되었는데, 출신 국가는 30~40개에 이르렀다.

겉모습만 보면 비슷해 보이는 백인들도 알고 보니 출신 국가가 제각각이었다. 미국인은 하나의 인종이나 문화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날 새삼 실감했다.

2년마다 참석하는 UPS 컨벤션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본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사람들이 같은 업계에서 일하며 한자리에 모인다.

미국 주류사회라고 하면 막연히 백인 미국인들의 세계를 떠올렸지만, 실제 미국 사회는 훨씬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미국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

엊그제는 중간선거 조기투표에 참여했다. 미국 시민이 된 뒤 다섯 번째쯤 되는 투표인 것 같다.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할 때마다 미국 시민으로서 누리는 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시민권을 취득했다고 해서 미국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거에 참여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권리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업을 하면서 가게가 속한 타운의 도서관, 소방서, 경찰서 등에 기부했던 것도 떠오른다. 지역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싶었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지급하며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보람도 있었다.

물론 이런 일들이 나를 미국의 주류층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꼭 주류층에 속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시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책임을 다하며,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것 역시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중요한 모습이다.

한인 1세대가 자녀에게 기대하는 것

그런데 자녀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주류사회’라는 말은 또 다른 의미가 된다.

나는 한동안 자녀들이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보다는 미국 회사에 취직하는 것을 주류사회에 들어가는 일처럼 생각했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가 중심인 직장보다 미국의 일반적인 직장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미국 사회에 더 깊이 들어가는 길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가까이 지내는 부부의 아들이 미국에서 영화배우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아도 비슷한 생각이 든다. 비록 단역이지만 미국 영화계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해 보인다.

정치에 진출하는 한인 2세들을 볼 때도 그렇다.

한인 1세대는 자신이 겪었던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자녀들은 넘어서기를 바란다. 영어가 편하고 미국 학교를 다녔으니 미국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정작 자녀들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그들에게 미국은 밖에서 들어가야 할 사회가 아니라 처음부터 살아온 곳이다. 미국 회사에 취직하는 일도 ‘주류사회 진입’이라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수많은 미국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직장을 구하고 경력을 쌓는 과정일 수 있다.

그렇다고 그 과정이 쉽다는 뜻은 아니다.

영어를 잘한다고 좋은 직장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미국에서 자랐다고 인종적 편견이나 경쟁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1세대 부모에게는 당연해 보이는 기대가 2세대 자녀에게는 또 하나의 부담이 될 수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역할이 어떻게 다른지는 109일 차 글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미국 주류사회란 무엇일까?

이제는 적어도 세 가지를 구별해야 할 것 같다.

미국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 미국 시민으로서 권리와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 그리고 미국 사회의 주요 분야에서 인정받고 영향력을 갖는 것이다.

이 가운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주류사회 진입’에 가장 가까운 것은 세 번째일 것이다.

단순히 미국인 친구가 많거나 시민권을 가졌다는 뜻이 아니라, 기업이나 정치·문화·지역사회 등의 주요 영역에서 동등한 기회를 얻고,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자신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지는 위치에 서는 것 말이다.

그렇다면 주류사회에 들어가는 일이 왜 어려울까?

영어와 문화의 차이도 있겠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 어느 사회에서든 인정받고 영향력을 갖는 자리에 이르는 일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민자에게는 언어와 문화적 장벽이 더해질 수 있고, 미국에서 자란 2세대라고 해서 모든 장벽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나는 한때 미국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주류사회 진입이라고 생각했고, 자녀가 미국 회사에 취직하는 것도 그렇게 여겼다.

하지만 시민권 선서식에서 다양한 배경의 새 시민들을 만났고, 사업을 하며 지역사회에 참여했으며, 이번에도 투표소에 가서 한 표를 행사했다.

이런 삶이 반드시 주류사회에 진입한 삶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 사회의 주변부에서 아무 역할 없이 살아가는 삶도 아니다.

주류사회에서 인정받는 것과 미국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다.

어쩌면 한인 1세대인 내가 자녀들에게 바라야 할 것도 조금 달라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미국 주류사회에 들어갔느냐고 묻기보다, 그 사회에서 스스로 선택한 일을 하며 자기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를 바라보는 것.

미국에서 잘 살아간다는 것의 기준을 꼭 주류사회 진입에 둘 필요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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