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일자리를 알아보면서 급여나 업무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언제 다시 일을 시작할지, 돈과 시간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그리고 내가 원하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지. 오늘은 실제 구직 경험을 바탕으로 다섯 가지 질문을 정리해 본다.
오늘은 은퇴 후 일자리 찾기에 관한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블로그 관리자 화면을 보다가 문득 댓글을 한번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이라는 이름 아래 어느새 70개가 넘는 항목이 쌓여 있었다.
그 숫자를 보고 독자들이 댓글을 많이 남겼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내 글에서 이전 글을 링크할 때 생기는 핑백도 댓글처럼 이곳에 쌓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핑백과 댓글이 한곳에 뒤섞여 있으면, 누군가 진짜 댓글을 남겨도 내가 알아볼 수 있을까?
그래서 핑백도 정리할 겸 댓글 목록을 제대로 들여다봤다.
그런데 정말 있었다.
70여 개의 핑백 사이에 진짜 댓글 하나가 섞여 있었다.
그것도 오늘 달린 댓글이 아니었다.
한 달 전에 달린 댓글이었다.
알고 보니 아내가 남긴 댓글이었다.
한 달이나 지나서야 발견하고 뒤늦게 답글을 달았다.
조금 웃기기도 했다.
블로그에 독자가 생길까 고민하면서 정작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남긴 댓글 하나도 한 달 동안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오늘 내가 지금까지 쓴 글들을 1일 차부터 하나씩 다시 훑어보게 됐다.
어느새 70개가 넘었다.
처음부터 이 블로그는 성공한 이야기만 쓰려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그날 배우고, 해보고, 실패하고, 다시 해본 것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모든 글에 앞뒤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하나씩 다시 읽어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우연히 이 글 하나를 읽는다면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까?
나에게는 기록이지만 처음 찾아온 사람에게는 그저 다른 사람의 하루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지난 글들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처음부터 나는 그렇게 쓰려고 시작했으니까.
다만 78일째가 된 지금은 한 가지를 더 생각하게 된다.
내 이야기를 기록하면서도,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무언가 하나쯤 남길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요즘 내가 가장 많이 고민하는 은퇴 후 일자리 찾기로 생각이 이어졌다.
가게는 올해 말 클로징을 목표로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목표는 그렇지만 정말 그렇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매각이라는 게 내가 날짜를 정한다고 그대로 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은퇴 후 할 수 있는 일도 찾아보고 있다.
며칠 전에는 USAJOBS에서 실제로 일자리 하나를 찾아 이력서를 새로 만들고 지원까지 했다.
그런데 막상 지원하고 나니 ‘어떤 일을 찾을까?’보다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그것들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본다.
1. 은퇴 후 일자리 찾기, 바로 시작해야 할까?
가게를 매각하고 나면 다음에 할 일을 찾아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해왔다.
그래서 아직 가게가 팔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일자리를 찾아보고 있다.
그런데 다른 생각도 든다.
꼭 바로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할까?
오랫동안 가게를 운영했다.
매각이 끝난다면 어느 정도 기간은 그냥 쉬어도 되는 것 아닐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가게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먼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
정해진 시간에 어디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
그런 시간을 얼마간 가져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또 막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생활을 생각하면 그것도 썩 편하지만은 않다.
며칠이면 좋을지, 몇 달이면 좋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은퇴를 준비하면서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다음에 무슨 일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인가인지도 모르겠다.
2. 나는 돈을 벌고 싶은 걸까, 계속 무언가를 하고 싶은 걸까?
은퇴 후 일자리를 이야기할 때 나는 흔히 ‘파트타임으로 용돈 정도 벌면 되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급여가 가장 중요한 조건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채용공고를 보고 있으면 사람 마음이 또 그렇지만은 않다.
시급이 얼마인지 보게 되고, 비슷한 일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주는 곳에 눈이 간다.
어차피 일할 거라면 더 받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생긴다.
그렇다고 급여만으로 일자리를 고르고 싶은 것도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은퇴 후 일을 찾는 이유가 돈 하나뿐인지부터 잘 모르겠다.
수입도 있으면 좋겠지만, 하루에 할 일이 있다는 것,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 그리고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느낌도 어쩌면 돈만큼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일자리를 찾기 전에 먼저 물어봐야 할 것 같다.
나는 돈이 필요한 걸까, 할 일이 필요한 걸까. 아니면 둘 다일까.
아직 내 답은 정해지지 않았다.
3. 돈을 벌기 위해 내 시간을 얼마나 내줄 수 있을까?
며칠 전 일자리를 찾아보면서 내가 의외로 자주 확인했던 것이 있다.
급여만큼이나 근무시간이었다.
하루 몇 시간인지, 일주일에 며칠인지, 출근과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지.
예전 같으면 직장을 다닌다는 것은 당연히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바로 그 부분이 고민된다.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그 일을 하기 위해 내 시간을 얼마나 내줄 수 있느냐다.
주 5일을 다시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고 싶은가.
아니면 일주일에 이틀이나 사흘 정도가 좋은가.
하루 종일 일하는 것보다 몇 시간만 일하는 것이 좋은가.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급여가 조금 적어도 괜찮은가.
채용공고를 보기 전에 오히려 이런 것부터 정해놓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근무방식을 모르면서 좋은 일자리를 찾는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니까.
4. 그 일이 내가 앞으로 살고 싶은 생활과 맞을까?
내년에는 이미 몇 가지 일정이 잡혀 있다.
연초에는 하와이 선교여행 일정이 있고, 연말에는 조카 결혼 때문에 한국에 갈 예정이다.
그 사이에는 올해처럼 남미 선교여행도 한 차례 다녀오게 될 것 같다.
그런데 새로운 직장을 갖게 되면 이런 일정들이 지금과는 달라질 수 있다.
휴가를 받아야 할 수도 있고, 근무 스케줄 때문에 날짜를 맞추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일자리를 보면서 새로운 질문이 하나 생겼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는가?
처음에는 그것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다음 질문도 필요할 것 같다.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는가?
급여가 괜찮고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도, 그것 때문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들을 계속 포기해야 한다면 과연 나에게 좋은 일자리일까.
은퇴 후의 직업은 예전의 직업과 선택 기준이 달라져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5.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얼마나 시간을 써도 될까?
이 질문을 생각하다 보니 결국 블로그로 돌아온다.
이 블로그도 처음에는 소소한 부업이라도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 애드센스 승인도 받지 못했다.
승인을 받는다고 바로 의미 있는 수입이 생기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보다 먼저 해결되어야 할 질문도 있다.
과연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생길까?
오늘 발견한 진짜 댓글 하나도 알고 보니 아내가 남긴 것이었다.
그러니 벌써 독자가 생겼다고 좋아할 상황은 아니다.
블로그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것은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시작하는 것과 직접 그 시간을 보내는 것은 역시 다르다.
글을 쓰고, 대표이미지를 만들고, SEO를 공부하고, 하나씩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일 시간이 들어간다.
당장 수입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느 시점에서는 물어볼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 미래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걸까?
아직은 답을 내리고 싶지 않다.
78일은 마라톤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인지도 모른다.
대신 오늘 지난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한 가지는 생각하게 됐다.
그동안 나는 주로 나를 위해 기록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게 이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였으니까.
하지만 앞으로는 거기에 하나를 더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내 경험을 그대로 기록하되, 처음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무언가 하나는 남는 글을 쓰는 것.
실패했다면 무엇 때문에 실패했는지.
문제를 해결했다면 무엇을 해봤는지.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질문 하나라도 던져볼 수 있도록.
그렇게 조금씩 바꿔보려고 한다.
오늘 다섯 가지를 적어놓고 보니 결국 같은 곳으로 모인다.
나는 지금 단순히 은퇴 후 일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가게를 언제 팔 것인지.
매각 후 얼마나 쉴 것인지.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얼마를 벌고 싶은지.
블로그를 계속할 것인지.
그리고 여행과 선교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내 것으로 남겨두고 싶은지.
서로 다른 고민 같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이다.
은퇴 후 내 시간을 어떻게 쓰며 살고 싶은가.
아직 답은 없다.
가게가 올해 말까지 매각될지도 모르고, 지원한 일자리에서 연락이 올지도 모르고, 애드센스가 언제 승인될지도 모른다.
블로그가 정말 작은 부업이라도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확실하지 않은 것투성이다.
그래서 지금 모든 것을 결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다만 앞으로 일자리를 하나 볼 때는 급여와 업무 내용만 보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일을 시작하면 나는 어떤 하루를 살게 될까?
오늘 다섯 가지를 적어보고 나니, 적어도 그 질문 하나는 전보다 조금 더 분명해졌다.